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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1부 · 임시정부와 제1공화국 1919–196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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임시정부와 제1공화국 1919–1960

나라를 세우고, 다시 빼앗기고, 되찾다

임시정부 수립부터 4·19까지. 임시정부의 투쟁, 정부 수립과 제헌, 농지개혁, 전쟁과 한미동맹 — 국가의 뼈대가 만들어진 시대를 읽는다.

위 지도의 시간축에서 해를 고르면 그 해의 기록이 분야별로 나오고, 장소가 확인된 기록은 지도에 점으로 찍힙니다. 아래는 이 시대의 기록 전체를 연도순으로 편 목록입니다.

이 시대의 정부

이 시대의 기록 — 32건

  1. 1919년 4월정치·제도

  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

   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이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헌장을 채택했다. 제1조 "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".

    해석 이 나라의 정체(政體)가 처음 문서로 선언된 날이다.

    출처 — 대한민국임시헌장 (1919.4.11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. 1919년 9월정치·제도

    통합 임시정부 출범

    상하이·한성·연해주에 나뉘어 있던 임시정부 조직이 하나로 통합됐다. 임시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제를 채택했다.

    출처 — 대한민국임시헌법 (1919.9.11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3. 1924년 8월사회·복지

    암태도 소작쟁의 승리

    신안 암태도 소작인들이 1년의 투쟁 끝에 7~8할이던 소작료를 4할로 낮췄다. 단식원정과 재판 투쟁으로 지주와 식민 권력을 함께 상대해 이긴, 식민지 대중운동의 드문 승리다.

    출처 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4. 1929년 11월정치·제도

    광주학생항일운동

   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 시위가 이듬해까지 전국 194개교로 번졌다. 3·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운동 — 오늘의 학생독립운동기념일(11월 3일)이 이날에서 왔다.

    출처 — 국가기록원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5. 1932년 1월정치·제도

    조선총독부, 농촌진흥운동 시작

    소작쟁의가 잇따르자 총독부가 "자력갱생"을 내걸고 농가 경제 갱생계획을 폈다. 지주·소작 관계의 구조는 손대지 않은 채 농민의 근면만을 요구한 정책이었다.

    출처 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6. 1936년 12월정치·제도

   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 시행

    형을 마친 사상범도 계속 감시할 수 있게 한 법령. 재판 없이 신병을 묶어 두는 길을 열어, 뒤이은 예방구금령(1941)으로 이어졌다.

    출처 —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 (1936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7. 1938년 4월경제

    국가총동원법, 조선에 적용

    사람과 물자를 전쟁에 동원할 수 있게 한 법. 이 한 법이 근거가 되어 국민징용령·물자통제·공출이 뒤따랐다. 강제동원의 법적 뿌리가 여기다.

    출처 — 국가총동원법 (1938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8. 1939년 11월사회·복지

    창씨개명 시행 공포

    조선민사령을 고쳐 일본식 성명을 쓰게 했다. 형식은 신고제였으나 학교 입학과 배급에서 불이익을 주어 사실상 강제했다.

    출처 — 조선민사령 개정 (1939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9. 1940년 9월국방·안보

    한국광복군 창설

    임시정부가 충칭에서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.

    해석 정부가 군대를 갖춘다는 것 — 국가의 형식을 갖추는 일이었다.

    출처 —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 (1940.9.17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0. 1941년 11월정치·제도

    대한민국 건국강령 발표

    광복 후 세울 나라의 설계도. 조소앙의 삼균주의(정치·경제·교육의 균등)를 바탕으로 보통선거, 토지개혁, 의무교육을 약속했다.

    출처 — 대한민국 건국강령 (1941.11.28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1. 1941년 12월외교

    임시정부, 일본에 선전포고

    진주만 공격 직후 임시정부가 대일 선전성명서를 발표했다.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후 질서에 참여하겠다는 외교 선언이었다.

    출처 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 (1941.12.10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2. 1945년 12월외교

   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

    미·영·소 외상이 한반도에 임시정부 수립과 최대 5년의 신탁통치 방안을 결정했다.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정치가 찬탁·반탁으로 갈라졌다.

    출처 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서 (1945.12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3. 1946년 10월정치·제도

    대구 10월 사건

   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경찰 발포를 계기로 봉기로 번졌고 유혈 진압됐다.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압 과정의 민간인 희생을 확인하고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.

    출처 — 진실·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(2010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4. 1948년 4월정치·제도

    제주 4·3

    단독선거 반대 봉기와 그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. 2000년 특별법, 2003년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공식 사과, 이후 희생자 보상 입법까지 — 반세기 만에 국가가 책임을 인정한 사건이다.

    출처 — 제주4·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(2003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5. 1948년 5월정치·제도

    5·10 총선거

    21세 이상 남녀 모두가 투표한 첫 보통선거로 제헌국회가 구성됐다. 여성이 처음부터 투표권을 가진 것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앞선 일이었다.

    출처 — 국회사무처, 제헌국회사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6. 1948년 7월정치·제도

    제헌헌법 공포

    제헌국회가 헌법을 만들어 공포했다. 전문은 "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"했고 이제 이를 "재건"한다고 적었다.

    해석 1919년을 출발점으로 삼는 관점은 헌법 제정 때부터의 것이다.

    출처 — 대한민국헌법 (1948.7.17 공포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7. 1948년 8월정치·제도

  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

    제헌헌법에 따라 정부가 구성되어 수립을 선포했다. 초대 대통령 이승만, 부통령 이시영 — 이시영은 임시정부 요인 출신이다.

    출처 — 국가기록원, 정부수립 기록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8. 1948년 9월경제

    귀속재산처리법 제정

    일본인이 남기고 간 공장·토지·주택을 어떻게 나눌지 정한 법. 전체 산업자본의 상당 부분이 이 절차로 민간에 넘어갔고, 그 배분 과정이 뒷날까지 논쟁으로 남았다.

    출처 — 귀속재산처리법 (1949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19. 1948년 10월정치·제도

    여수·순천 10·19 사건

    제주 진압 출동을 거부한 군 부대의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이 대거 희생됐다. 국가보안법 제정(1948.12)의 직접 배경이 됐고, 2021년 특별법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제도화됐다.

    출처 — 여수·순천 10·19사건 특별법 (2021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0. 1950년 3월경제

    농지개혁 실시

    유상몰수·유상분배 방식으로 소작농에게 농지를 나눴다. 지주-소작 관계가 해체되며 이후 산업화의 사회적 바탕이 됐다는 평가와, 한계에 대한 논쟁이 함께 있다.

    출처 — 농지개혁법 (1949.6 제정, 1950.3 개정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1. 1950년 6월경제

    한국은행 설립

    중앙은행이 문을 열었다. 돈을 찍고 물가를 지키는 일을 정부가 아닌 독립 기관에 맡긴다는 원칙의 출발점 — 개전 13일 전이었다.

    출처 — 한국은행법 (1950.5 제정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2. 1950년 6월국방·안보

    한국전쟁 발발

   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. 유엔 안보리가 참전을 결의해 16개국이 병력을 보냈다. 이후 모든 안보 제도가 이 전쟁의 그늘에서 만들어진다.

    출처 — 유엔 안보리 결의 82·83·84호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3. 1951년 2월정치·제도

    거창 민간인 희생 사건

    공비 토벌 작전 중 군이 신원면 주민 수백 명을 집단 학살했다. 전시 국회의 조사로 드러나 책임자들이 군법회의에 섰고, 1996년 특별법으로 명예회복이 이뤄졌다.

    출처 —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법 (1996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4. 1951년 12월정치·제도

    자유당 창당

    임시수도 부산에서 이승만을 총재로 첫 집권 여당이 창당됐다. 직선제 개헌을 밀어붙일 원내 조직이 목적이었다 — 이후 보수 정당들과의 조직적 계승 관계는 없다.

    출처 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당사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5. 1952년 4월정치·제도

    첫 지방선거

    전쟁 중에 시·읍·면의회 의원을 뽑았다.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첫 시도 — 그러나 이 제도는 5·16 이후 중단되어 1991년에야 돌아온다.

    출처 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사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6. 1953년 7월국방·안보

    정전협정 조인

    유엔군·북한군·중국군 사령관이 정전에 서명했다.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협정 —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멈춘 상태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.

    출처 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(1953.7.27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7. 1953년 10월외교

   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

    미국과의 동맹이 조약으로 성문화됐다(1954.11 발효). 주한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이자, 이후 70년 한국 외교·안보의 기본 틀이 된다.

    출처 — 한미상호방위조약 (1953.10.1 서명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8. 1954년 1월사회·복지

    초등 의무교육 완성 6개년 계획

    모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국가 목표로 삼았다. 1959년까지 취학률 96%에 도달.

    해석 이후 산업화를 떠받친 인적 기반이 이때 만들어졌다.

    출처 — 문교부, 의무교육완성 6개년계획 (1954–1959)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29. 1955년 9월정치·제도

    민주당 창당 — 계보의 뿌리

    사사오입에 반발한 범야권이 결집했다(대표최고위원 신익희). 오늘날 민주당 계보가 창당으로 기산하는 뿌리다.

    출처 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당사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30. 1960년 3월정치·제도

    3·15 부정선거와 마산의거

    정·부통령 선거에서 대규모 부정이 저질러졌다. 사전투표함 바꿔치기, 공개투표 강요 — 이에 항의한 마산 시위에서 김주열 학생이 희생됐고,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.

    출처 — 4·19혁명 관련 국가기록원 기록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31. 1960년 4월정치·제도

    4·19 혁명

   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났다.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첫 경험 — 현행 헌법 전문은 "불의에 항거한 4·19민주이념"의 계승을 명시한다.

    출처 — 대한민국헌법 전문 · 지도에서 열기 ↑

  32. 1960년 6월정치·제도

    내각책임제 개헌 (제2공화국)

   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내각책임제와 양원제 국회를 도입했다. 그러나 이 체제는 이듬해 5·16으로 1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.

    출처 — 헌법 제3차 개정 (1960.6.15) · 지도에서 열기 ↑